acrosstheunivers
당신과 나


moonaa, 19 Jan 2012

여기, 비엔나에는 아침부터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이른 시간에 눈이 떠져서, 오늘은 뭐라도 해보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어요. 하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 이렇게 공책을 펴고 만년필에 잉크를 다시 채워 편지아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수 개월 동안 정말 많은 신나는 일들이 있었지만 왠일인지 당신에게 글을 써 소식을 전할 마음이 나지 않더군요. 그것은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아니, 당신의 탓입니다. 그저 당신이 어느 순간부터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시작했고, 그때문에 저는 당신과 함께 했던 많은 멋진 습관들을 멈추어야만 했습니다.

여기, 생활에도 차츰 적응해 나가고 있답니다. 회사에서는 능숙하게 담배를 말아피우며 동료들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한답니다. 답답할 때 찾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들도 발견했고 친구들과 맥주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멋진 카페도 발견했지요. 다만, 아직 한 장의 그림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급하게 생각할 것 없으니, 무엇이든 천천히 공들여 생각하고 쓰고 그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림에 있어서는 약간의 변화를 가져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촌스럽지 않고 멋부리지 않은, 심심하지만 단 하나의 맑고 투명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네요. 어느 순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쓸데없는 의심과 변명, 걱정들로부터 산뜻하게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이 여기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관념으로부터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도 그런 생각과 다짐으로 이 글을 남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굳게 닫힌 창문이 저절로 열리네요.)

며칠 전부터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어요. 아마 당신도 언젠가는 그런 기분을 느껴보지 않았을까요. 왠지 당신은 항상 더 많은 다양한 기분들에 대해,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만 같아요. 여하간, 왠지모를 공중에 붕 뜬 것만 같은, 중심을 잃었을 때의 어지러움을 동반한 그런 묘하고 아찔한 기분이었어요. 공중으로 높이 떠오르고 있는 것인지, 수중으로 낮게 가라앉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기분 말이지요. 한동안 그 기분에 대해 글로, 말로, 또 그림으로 옮겨 적어보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더군요. 그런데 어쩌면, 당신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저 또한 당신으로부터, 당신의 시간과 공간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그저 당신과 같은 처지에 있음을 고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해서 당신을 생각하며 또 글을 더 자주 쓸 수 있고 당신이 나와 같은 세계에 동시에 없고 또 있다고 여길 수 있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고 한다면, 이런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용서가 되지 않을까요.

여하간, 참으로 다행입니다.